20240219.공학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

최근의 경험에서 느낀 바가 있어 생각을 갈무리 해둔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문제가 있다. 그중 내가 관심을 두는 문제는 공학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이다. 공학적 문제, 사회적 문제를 주관적으로 정의하고 논하겠다.

공학적 문제란 이상적인 상태를 정의할 수 있고, 현재 상태를 정의할 수 있으며, 따라서 현재 상태와 이상적인 상태 간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테슬라가 풀고자 하는 자율주행이라는 문제는 공학적 문제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고율 0%”라는 이상적인 상태가 존재하며, 현재 상태를 정의할 수 있고, 현재 상태와 이상적 상태 간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율 0%”라는 것도 상상 속의 개념이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운전을 통해 사고율이 0%에 가깝다고 느끼는 상태가 최선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사고율 0%가 미래의 사고율 0%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수준 이상으로 올라온 솔루션이면 자율주행 문제를 “해결했다”라고 선언할 수 있다.

문제가 태클하려는 이상적인 상태에, 조건이 추가될수록 좀 더 구체적이고 작은 범위의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차선을 유지함에 있어 에러율 0%”라면 자율주행의 하위 문제인 Lane Keeping이다. 성취를 주장하려면 문제를 작게 정의하여 완벽히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를 너무 작게 정의하면 풀어도 의미가 없다. 문제를 풀었을 때 단속적인 상태 변화가 일어난 수준은 되어야 의미가 있다. 적어도 “고속도로 직선주로에서는 쉬셔도 됩니다” 수준은 되어야 의미 있는 자율주행 기술의 진보가 아니겠나. “문제 정의가 너무 작지는 않은지”, “너무 많은 조건을 동반하는 건 아닌지”는 시스템을 사용하는 입장에 서봐야 느끼고 파악할 수 있다. 공학 기술의 최전선이 학계가 아니라 기업에 있는 이유이다.

한편,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사회적 문제”란 “문제 간 위계와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결정하는 문제”이다. 흔히 말하는 “사회적 지능”이 필요한 문제라는 의미에서 임시로 그리 명명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지능이란 여러 상충하는 문제와 가치들의 트레이드 오프 중에서 우선순위에 맞게 문제 풀이 자원을 투입하며, 그것을 장단기 시간 축에서 잘 다루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능력이 다루는 문제들은 공학적 문제에 비해 “이상적 상태”가 널리 합의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구체적인 예시로 논의를 풍부하게 하고 싶지만, 훗날 추가로 다루겠다.

내가 요즘 관여하는 문제 중 하나도 “사고율 0%”라는 이상적인 상태가 존재하며, 그것에 가까이 가는 여정이 솔루션의 진화 과정이다. 여정의 마일스톤을 뭐라고 부르든, 문제가 해결된 상태, 사고가 상당히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상태, 혹은 사고 피해의 기댓값이 상당히 낮은 상태가 좋은 솔루션이며 문제의 해결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즉, 공학적 문제이다.

다만 그러한 공학적 문제를 팀원들과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원을 얻기 위해 윗선을 설득하는 문제”, “타팀과 최종 솔루션에 대한 이견을 align 해야 하는 문제”, “너무 자주 토론하면 피곤하고 방어기제가 올라오니, 핵심 문제 해결에 마이너한 불일치는 뭉개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 등등을 마주할 때가 있다. 사회적 지능이 필요한 순간들이다. 이러한 문제의 쓰나미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려면 애교와 카리스마와 지혜와 여유로 무장해야 한다.

문제 투성이 세상이라 재미있다. 에너지가 충분해야 계속 재밌을 수 있다. 내게 에너지를 주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감사를. 이제 잠자러 가련다.

orpyb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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